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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박물관 특별전 「청계천의 별이 된 노무라 모토유키」 관람기 — 한 일본인 목사가 카메라에 담은 1970년대 청계천 판자촌, 사진 속에서 지금도 숨 쉬는 사람들 (관람료 무료 · 주차비만 별도) 清渓川博物館 特別展「清渓川の星になった野村基之」観覧記 — ある日本人牧師がカメラに収めた1970年代・清渓川のバラック街、写真の中で今も息づく人びと(入場無料・駐車料金のみ別途)

청계천박물관 특별전 「청계천의 별이 된 노무라 모토유키」 관람기 — 한 일본인 목사가 카메라에 담은 1970년대 청계천 판자촌, 사진 속에서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사람들

清渓川博物館特別展「清渓川の星になった野村基之」観覧記 — ある日本人牧師がカメラに収めた1970年代・清渓川バラック街、写真の中で今も息づく人びと

들어가며 | 청계천 하류, 유리로 된 가느다란 건물로

주말에 딱히 계획도 없이 청계천변을 걷다가 슬쩍 들어간 곳이 청계천박물관이었어요. 마장축산물시장 근처, 청계천 하류 쪽으로 쭉 뻗은 유리 건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박물관이에요. 밖에서 보면 조용한 공공시설 같은 인상인데, 1층 기획전시실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마음을 깊이 붙잡는 전시를 만났어요. 그게 바로 특별전 「청계천의 별이 된 노무라 모토유키」예요.

はじめに|清渓川の下流、ガラス張りの細長い建物へ

週末、特に予定も決めずに清渓川沿いを歩いていて、ふらりと立ち寄ったのが清渓川博物館でした。馬場畜産物市場の近く、清渓川の下流側にすっと伸びるガラス張りの建物があり、それが博物館です。外から見ると静かな公共施設という印象ですが、1階の企画展示室で思いがけず深く心をつかまれる展示に出会いました。それが、特別展「清渓川の星になった野村基之」です。

솔직히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어요

솔직히 처음엔 “청계천 복원 설명이 중심인 동네 학습 시설이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전시실에 들어가니 그 인상이 금방 바뀌었어요. 벽 가득 늘어선 흑백 사진들, 꼼꼼하게 정리된 연표, 일기와 스크랩북, 그리고 한 일본인 목사가 수십 년에 걸쳐 마주한 청계천의 기록들. 역사 전시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시선과 만나는 공간이었어요.

正直なところ、最初は軽く考えていた

正直なところ、最初は「清渓川復元の説明が中心の、地域の学習施設かな」と軽く考えていたんです。ところが実際に展示室へ入ると、その印象はすぐに変わりました。壁いっぱいに並ぶモノクロ写真、丁寧に整理された年表、日記やスクラップブック、そして一人の日本人牧師が何十年もかけて向き合った清渓川の記録。歴史展示というより、ひとりの人間のまなざしに出会う場だったのです。

清渓川博物館の外観|ソウル城東区・清渓川沿いのガラス張りの建物

노무라 모토유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 목사이자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 1931~2025)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목사예요. 집안은 비교적 유복한 편으로, 할아버지는 교토에서 방직 공장을 운영했고, 아버지는 도시샤대학에서 가르쳤으며, 어머니는 일본 소비자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분이었다고 해요. 도쿄의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켄터키와 페퍼다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어요.

野村基之とは誰だったのか|牧師であり、社会運動家でもあった人物

野村基之(のむら もとゆき、1931〜2025)は、日本・京都に生まれた牧師です。家柄は比較的裕福で、祖父は京都で紡織工場を営み、父は同志社大学で教え、母は日本の消費者運動の先駆者として知られる人物だったそうです。東京の大学を卒業したのち渡米し、ケンタッキーやペパーダインで神学を学んで牧師となりました。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청계천으로 향한 발걸음

한국과의 인연은 1968년, 서울에 있는 기독교대학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하면서 시작됐어요. 그 후 1973년부터 1985년에 걸쳐 무려 50회 이상 일본과 한국을 오갔다고 해요. 당시 일본인의 체류 허가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짧게 입국했다가 출국하는 걸 반복하면서도, 그래도 몇 번이고 청계천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이 전시를 보면서 강하게 느낀 건, 노무라 씨가 단순히 “한국 지원에 열심인 일본인”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는 역사의 아픔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청계천의 삶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관여하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었어요.

韓国との縁、そして清渓川へ向かった足取り

韓国との縁が始まったのは1968年、ソウルにあるキリスト大学側の招きを受けて初めて韓国を訪れたことからでした。その後、1973年から1985年にかけて、実に50回以上も日本と韓国を行き来したといいます。当時は日本人の滞在許可が短かったため、短く入国しては出国するということを繰り返しながら、それでも何度も清渓川に足を運び続けました。この展示を見て強く感じたのは、野村さんが単なる「韓国支援に熱心な日本人」ではなかったことです。彼は、歴史の痛みを自分の問題として引き受け、清渓川の暮らしを”見に行く”だけでなく、”そこに関わる”ことを選んだ人でした。

清渓川博物館 特別展「清渓川の星になった野村基之」の展示室

청계천에 계속 찾아간 이유 | 깊은 ‘책임’의 감각

노무라 씨가 청계천을 반복해서 찾은 배경에는 깊은 ‘책임’의 감각이 있었어요. 그는 한국에서 식민지 지배의 상처, 분단, 전쟁의 후유증을 직접 목격하면서, 일본이 가해의 편에 있었던 역사를 자기 안에서 외면할 수 없게 됐던 거라고 생각해요. 전시 패널에는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한국전쟁도 없었고, 청계천의 가난한 사람들도 생겨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취지의 말이 소개되어 있었어요. 꽤 무거운 말이지만, 전시 전체를 통해 보면 단순한 반성의 표명이 아니라 행동으로 바꾸려 했던 사람의 말이라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그는 청계천 골목으로 몇 번이고 돌아갔던 거겠죠.

清渓川に通い続けた理由|深い「責任」の感覚

野村さんが清渓川に繰り返し通った背景には、深い「責任」の感覚がありました。彼は韓国で、植民地支配の傷、分断、戦争の後遺症を目の当たりにし、日本が加害の側にいた歴史を自分の中で無視できなくなったのだと思います。展示パネルには、「日本の侵略がなければ朝鮮戦争もなく、清渓川の貧しい人びとも生まれなかったかもしれない」という趣旨の言葉が紹介されていました。かなり重い言葉ですが、展示全体を通して見ると、単なる反省の表明ではなく、行動に変えようとした人の言葉だと分かります。だからこそ彼は、清渓川の路地へ何度も戻っていったのでしょう。

1970년대 청계천 판자촌 | ‘빈곤의 기록’이 아닌 ‘삶의 기록’

1970년대 청계천 하류에는 전쟁 피난민과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모여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한때 1,600세대 가까이 밀집해 있었다고도 해요. 지금의 정비된 청계천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예전에 이 강변은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생겨난 삶의 터전이었어요. 노무라 모토유키의 사진이 귀한 이유는, 이런 장소를 원거리에서 ‘기록’한 게 아니라 생활의 내부로 들어가서 찍었다는 점이에요. 빨래, 골목, 아이의 표정, 집 앞에 앉은 사람, 일상의 움직임. 행정 기록에서 흔히 보이는 ‘철거 전 현황 사진’과는 달리, 거기엔 삶의 온도가 남아 있었어요.

1970年代の清渓川バラック街|「貧困の記録」ではなく「暮らしの記録」

1970年代の清渓川下流には、戦争の避難民や地方から上京してきた人びとが集まり、バラック街が広がっていました。一時は1,600世帯近くが密集していたとも言われます。現在の整備された清渓川からは想像しづらいですが、かつてこの川沿いは、都市化の影で生まれた生活の場でした。野村基之の写真が貴重なのは、こうした場所を遠景で「記録」したのではなく、生活の内部に入り込んで撮っている点です。洗濯物、路地、子どもの表情、家の前に座る人、日常の動き。行政記録にありがちな「撤去前の現況写真」とは違い、そこには暮らしの温度が残っていました。

오래된 사진인데 ‘지금도 살아 있는 누군가’처럼 보였어요

오래된 사진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옛날 풍경”으로 거리를 두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전시에서는 사진 속 사람들이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누군가’로 보이는 거예요. 이건 찍는 쪽이 상대를 대상물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로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전시 중반에는 1973년부터 1976년경에 걸친 철거의 기록이 이어지는데, 앞부분에서 봤던 표정들이 뒷부분에서는 짐을 지고 걸어가는 모습으로 이어지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무거워져요. 시간순으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어서, 사진을 그냥 바라보는 것 이상의 체험이 됐어요.

古い写真なのに「今も生きている誰か」のように見えた

古い写真を見ると、どうしても「昔の風景」として距離を置きがちです。けれどこの展示では、写真の中の人たちが”過去の人”ではなく、”今も息づく誰か”として見えてくるんです。これは、撮る側が相手を対象物としてではなく、ひとつの共同体として見つめていたからかもしれません。展示の中盤では、1973年から1976年ごろにかけての撤去の記録が続き、前半で見た表情が後半では荷を背負って歩く姿へとつながっていくため、見ている側の気持ちも自然と重くなります。時系列で展示が組まれているので、ただ写真を眺める以上の体験になるんですよね。

野村基之が撮影した1970年代・清渓川バラック街の路地と子どもたち

노무라 컬렉션의 가치 | 사진, 일기, 스크랩북이 말하는 것

노무라 목사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고 해요. 그것도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활동의 일부였던 거예요. 전시에서는 사진뿐만 아니라 일기, 스크랩북, 지도, 자료 등 약 3,800점에 달하는 ‘노무라 컬렉션’의 일부를 볼 수 있어요. 이 자료들은 2006년 2월 서울시에 기증됐어요. 청계천이 복원되는 시기와 맞물려, 역사의 기록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 거예요. 지금 우리가 1970년대 청계천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건, 이 기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ノムラ・コレクションの価値|写真、日記、スクラップブックが語るもの

野村牧師はいつもカメラを持ち歩いていたそうです。しかも、それは単なる趣味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写真を撮ること自体が、自分の活動の一部だったのでしょう。展示では、写真だけでなく日記、スクラップブック、地図、資料など、約3,800点に及ぶ「野村コレクション」の一部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これらの資料は、2006年2月にソウル市へ寄贈されました。清渓川が復元される時期と重なるタイミングで、歴史の記録が次の世代へ引き継がれたわけです。今こうして私たちが、1970年代の清渓川を具体的に知ることができるのは、この寄贈があったからこそですね。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직필 일기와 스크랩북이었어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1971년부터 1981년까지의 직필 일기와 스크랩북이었어요. 일본어로 빼곡하게 적힌 지면에서는, 그날그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가 전해져 와요. 사진이 ‘본 것’이라면, 일기는 ‘느낀 것’이에요. 둘 다 갖춰짐으로써 노무라 씨의 모습이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사진 속 사람들이 정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예요. 사람의 얼굴, 손, 시선, 집 입구, 골목의 너비. 그런 세부들이 피사체를 ‘옛날의 빈곤’에 가두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생활인’으로서 이쪽에 돌려보내 줘요.

特に印象的だった直筆の日記とスクラップブック

特に印象的だったのは、1971年から1981年までの直筆の日記やスクラップブックです。日本語でびっしり書き込まれた紙面からは、その日その日をどう受け止め、何を考えていたのかが伝わってきます。写真が「見たもの」なら、日記は「感じたこと」。両方がそろうことで、野村さんの姿がぐっと立体的になります。今回の展示でいちばん心に残ったのは、写真の中の人たちが本当に生きているように見えたことでした。人の顔つき、手元、視線、家の入口、路地の幅。そうした細部が、被写体を”昔の貧困”に閉じ込めるのではなく、”ひとりの生活者”としてこちらに返してくれます。

清渓川博物館に並ぶ野村基之のモノクロ写真 野村基之が記録した清渓川バラック街の暮らしと撤去の記録

목사로서의 실천 | 말보다 먼저, 현장으로 들어간 사람

노무라 모토유키는 신앙을 말로만 끝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집을 팔아 청계천에 탁아소를 짓고, 독일과 뉴질랜드의 구호 단체와 협력해 아이들에게 급식을 전달했어요. 철거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뉴질랜드에서 소 수백 마리를 구입해 보냈다는 에피소드도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어요. 일본에서 모아 한국으로 보낸 자금은 누계로 7,500만 엔을 넘는다고 전해져요. 그런데도 그는 그걸 ‘선행’이라 부르지 않고 ‘속죄’라고 불렀다고 해요. 이 말의 무게가, 전시 제목의 배경에 있다고 느꼈어요.

牧師としての実践|言葉より先に、現場へ入る

野村基之は、信仰を言葉だけで終わらせなかった人です。母から受け継いだ家を売って清渓川に託児所を建て、ドイツやニュージーランドの救護団体と協力して子どもたちに給食を届けました。撤去で住まいを失った人びとのために、ニュージーランドから牛を数百頭購入して送ったというエピソードも展示で紹介されています。日本で集めて韓国へ送った資金は、累計で7,500万円を超えると伝えられています。それでも彼は、それを「善行」とは呼ばず、「贖罪」と呼んだそうです。この言葉の重みが、展示タイトルの背景にあるのだと感じました。

청계천을 떠난 뒤에도 계속된 걸음

노무라 씨의 활동은 1980년대 청계천에서 끝나지 않아요. 일본 야마나시의 산속 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이어가면서도 한국과의 연결을 계속 유지했어요. 2009년부터는 매년 한국을 방문해 장애 아동을 지원하는 재단을 찾았어요. 또 2012년에는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어요. 그 행동으로 일본 국내에서 협박을 받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각오가 느껴져요. 2013년에는 서울시 명예시민, 2015년에는 제1회 아시아 필란트로피 어워드를 수상했어요. 2025년 7월 26일, 94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이번 전시는 그 1주기에 맞춘 추도전이기도 해요.

清渓川を離れたあとも続いた歩み

野村さんの活動は、1980年代の清渓川で終わりません。日本・山梨の山あいの教会で長く牧会を続けながら、韓国とのつながりも保ち続けました。2009年からは毎年韓国を訪れ、障がいのある子どもたちを支援する財団を訪問しています。さらに2012年には、在韓日本大使館前の少女像の前でひざまずき、謝罪しました。その行動によって日本国内から脅迫を受けたこともあったそうですが、それでもやめなかったという点に、彼の覚悟がにじみます。2013年にはソウル市名誉市民、2015年には第1回アジア・フィランソロピー・アワードを受賞し、2025年7月26日、94歳で亡くなりました。今回の展示は、その一周忌に合わせた追悼展でもあります。

清渓川博物館で公開された野村基之の日記とスクラップブック 観覧を終えて出た現在の清渓川|清渓川博物館のそば

관람 소감과 추천 포인트 | 무료인데 이렇게 깊은 전시는 진짜 귀해요

이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은 무료라는 것 이상으로, “무료인데 내용이 진하다”는 점이에요. 청계천박물관은 서울시 공공기관으로, 상설전시도 특별전도 입장료가 없어요. 실제로 이번에 돈이 든 건 주차비뿐이었어요. 가볍게 들어갔는데 나올 때쯤엔 꽤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전시예요. 특히 추천하고 싶은 건, 먼저 상설전시를 조금 보고 나서 기획전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청계천의 복개와 복원 역사를 알아두면, 노무라 모토유키의 기록이 갖는 의미가 훨씬 선명하게 보여요. 사진 수가 많으니까 시간 여유를 갖고 1시간 정도 확보하면 좋아요.

観覧の感想とおすすめポイント|無料でここまで深い展示はかなり貴重

この展示のいちばんの魅力は、無料であること以上に、「無料なのに内容が濃い」点です。清渓川博物館はソウル市の公共機関で、常設展示も特別展も入場料がかかりません。実際にお金が動いたのは、今回は駐車料金だけでした。気軽に入れるのに、出るころにはかなり心が動かされる、そんな展示です。特におすすめしたいのは、先に常設展示を少し見てから企画展へ入ること。清渓川の覆蓋と復元の歴史を知っておくと、野村基之の記録が持つ意味がよりはっきり見えてきます。写真の点数が多いので、時間に余裕を持って1時間ほど確保するとよいでしょう。

월요일 휴관이니까 주말 산책 코스에 넣기도 좋아요

월요일 휴관이라서 주말 서울 산책 코스에 넣기도 좋아요. 관람 후에 청계천 산책로를 조금 걸으면서 돌아가면, “지금의 강”과 “예전의 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과거를 보고, 그 장소를 걷고, 현재 도시의 모습을 확인하는. 이런 방식이 정말 잘 맞는 곳이에요. 전시를 다 보고 나서 밖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지금의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요. 정비되고 걷기 좋아진 도시의 강이에요. 그런데 그 물 아래에, 예전의 삶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판자촌은 없어졌어도, 거기에 누가 살았고 어떤 시간을 살았는지는 사진과 기록 속에 남아 있어요.

月曜休館なので週末の散歩コースにも組みやすい

月曜休館なので、週末のソウル散歩コースにも組みやすいです。観覧後に清渓川の遊歩道を少し歩いて帰ると、「いまの川」と「かつての川」が自然につながって感じられます。過去を見て、その場を歩いて、現在の都市の姿を確認する。こういう回り方が、とても合う場所でした。展示を見終えて外に出ると、すぐ隣には今の清渓川が流れていました。整備され、歩きやすくなった都市の川です。でも、その水の下に、かつての暮らしが完全に消えたわけではないんですよね。バラック街はなくなっても、そこに誰が住み、どんな時間を生きたのかは、写真と記録の中に残っています。

마치며 | 사진 속에,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 있어요

그 기록을 남긴 게 한 일본인 목사였다는 사실도 강하게 인상에 남았어요. 역사 전시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본다는 것”, “책임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예요.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렇게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요. 서울에서 조금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 청계천의 역사에 관심 있는 분, 사진전을 좋아하는 분께 진짜 추천해요. 가볍게 들어가서, 무겁지만 따뜻한 기억을 갖고 나오는. 그런 하루가 될지도 몰라요. 전시 제목 「청계천의 별이 된 노무라 모토유키」가 처음엔 약간 과장된 것 같다고 느꼈는데, 다 보고 나서는 오히려 그 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おわりに|写真の中に、まだ終わっていない時間がある

その記録を残したのが、ひとりの日本人牧師だったという事実もまた、強く印象に残りました。歴史展示でありながら、同時に「人を見ること」「責任を引き受けること」を考えさせる展示です。無料で入れて、これだけ深く考えさせられる場所は、そう多くありません。ソウルで少し静かな時間を過ごしたい方、清渓川の歴史に関心のある方、写真展が好きな方には、かなりおすすめです。気軽に入って、重く、しかし優しい記憶を持って帰る。そんな一日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展示タイトル「清渓川の星になった野村基之」が最初は少し大げさに思えたけれど、見終えたあとはむしろその言葉しかない、と感じました。

📍 방문 정보 / 訪問情報

청계천박물관 특별전 「청계천의 별이 된 노무라 모토유키」

清渓川博物館 特別展「清渓川の星になった野村基之」

장소 / 会場: 청계천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 清渓川博物館 1階 企画展示室
주소 / 住所: 서울특별시 성동구 청계천로 530 (마장동 527-4) / ソウル特別市 城東区 清渓川路530(馬場洞527-4)
관람 시간 / 開館時間: 09:00 ~ 18:00
휴관일 / 休館日: 매주 월요일, 1월 1일 / 毎週月曜日、1月1日
관람료 / 観覧料: 무료 / 無料
주차 / 駐車場: 지하 1층, 소형 44대, 5분당 150원 / 地下1階、小型44台、5分あたり150ウォン
문의 / 問い合わせ: 02-2286-3410
교통 / アクセス:
·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2번 출구 → 마을버스 08번 「성동종합사회복지관」 하차
· 지하철 2호선 용두(동대문구청)역 5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4번 출구에서 청계천 방면 도보 15분
· 地下鉄2号線 上往十里駅2番出口 → マウルバス08番「城東総合社会福祉館」下車
· 地下鉄2号線 龍頭(東大門区庁)駅5番出口から徒歩10分
· 地下鉄1号線 祭基洞駅4番出口から清渓川方面へ徒歩15分

자주 묻는 질문 | 청계천박물관 관람 전 체크

よくある質問|清渓川博物館へ行く前にチェック

Q. 入場料はいくらですか?
清渓川博物館はソウル歴史博物館の分館で、常設展示も特別展も入場無料です。実際に支払ったのは駐車料金だけでした。
Q. 입장료는 얼마인가요? → 청계천박물관은 상설전시도 특별전도 모두 무료입니다.

Q. 開館時間と休館日は?
清渓川博物館の開館時間は09:00〜18:00、休館日は毎週月曜日と1月1日です。月曜が休館なので、週末のおでかけに組み込みやすいです。
Q. 관람시간과 휴관일은? → 09:00~18:00,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휴관입니다.

Q. 特別展「清渓川の星になった野村基之」の会期は?
2026年6月13日から10月11日まで、清渓川博物館1階の企画展示室で開催されています。野村基之の一周忌に合わせた追悼展です。
Q. 특별전 기간은? → 2026년 6월 13일 ~ 10월 11일, 1층 기획전시실.

Q. アクセスと駐車場は?
清渓川博物館の住所はソウル特別市 城東区 清渓川路530。地下鉄2号線 上往十里駅2番出口からコミュニティバス08番「城東総合社会福祉館」下車が便利です。駐車場は地下1階に小型44台、料金は5分あたり150ウォン。台数が少ないので公共交通がおすすめです。
Q. 가는 길과 주차는? → 성동구 청계천로 530, 지하 1층 소형 44대·5분당 150원.

Q. 観覧の所要時間は?
写真の点数が多いので、解説パネルまで読むなら1時間ほど。清渓川博物館の常設展示で清渓川の覆蓋と復元の歴史を先に見ておくと、特別展の理解がぐっと深まります。
Q. 관람 소요 시간은? → 천천히 보면 1시간 정도가 적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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